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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인문고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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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겨울, 제12회 밀양인문고전아카데미 관련 밀양신문 투고내용 전문(김금조/밀양신문 주부기자) 관리자
2013-04-01 1606

2013 겨울, 점필재연구소 제 12회 밀양 인문 고전 아카데미 개강


- 인물로 조망한 밀양의 문화 그리고 주역과 불경에 대한 성찰-


 


지난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소장 : 정출헌 교수)와 인문한국(HK) [고전번역+비교문화학연구단]이 주최하고 한국 연구재단의 후원으로 밀양시 여성회관 3층 대강당에서 제12회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가 열렸다. 서울 또는 먼 곳에서 오는 강사진과 수강생의 편의를 위해 5시간 강의는 오전 103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5시에 끝난다.


 


우리고전 아카데미는 인물로 조망한 밀양의 문화 인물을 다루었다.


제1일(1월 21일) 다섯 시간의 강의는 동국대 이철헌 교수가 사명당의 구도(求道)와 구국(救國)이란 주제를 가지고 심도 깊은 강의를 펼쳐 나갔다.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것은 사전적 지식-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 1544∼1610)은 풍천 임씨로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송운(松雲), 은봉(숨은 봉우리), 별호는 종봉,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일으킨 전설적인 구국의 화신이다.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Ⅰ. 구도의 장에서는 출가(出家)의 어의와 사명당의 출가시기, 출가동기를 짚어보고 법명과 자호, 18세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여 당대의 사대부와 시를 주고받았으나 32세 때 참된 수도의 길을 찾아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가 되어 서산대사 휴정의 법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밝혀 나갔다. 세간에 널리 퍼져 있는 사명대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찾아 낸 흔적이 보인다.


Ⅱ. 구국의 장에서는 사명대사께서 49세에 임란을 맞아 의승병을 일으켜 참전한 것에 대한 불교계와 유교계의 시각을 살펴보았다. 49세 이후 불제자를 기르지 못했던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직계였으나 불교계에서 제외되고 나라에서도 세속의 행적 중요시하지 않는 스님이라 그 공훈 기록한 바 없었고 스님에 대한 합당한 예우는 없었다. 그러나 대사를 잊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어 연구 자료는 끝없이 나올 것이다(허균이 지은 석장비(石藏碑) 외 다수). 스님은 원래 수염을 기르지 않는데 사명대사의 영정에는 유독 긴 수염이 있다. 이를 유교적으로 보기도 하나 임란 이후에 수염을 기른 것으로 보아 보살의 자비행으로 참전했으나 살생을 금하는 불가의 계율을 어긴 것에 스님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껴 기른 것이 아니었을까? 사명대사는 적진 탐정, 탐적사(探賊使), 동포 쇄환 등 외교승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Ⅲ. 사명대사는 출가 수행자로서 법력을 갖춘 고승이며 회통과 화쟁의 정신으로 대승의 보살행을 하셨고 민중의 대변자로 평가할 수 있겠다. 앞으로의 과제는 사명당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 역사적 사실로 평가해야 하고 구국의 인물로 추모해야 하며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전문 연구 기관이 필요하다. 1714년 유림들의 건의로 표충사가 창건되었고 해인사와 밀양의 표충사 쟁탈전이 있었을 때도 밀양 유림들의 강력한 저지로 표충사는 밀양에 있게 되었다. 그런 만큼 사명대사(또는 표충사)는 밀양이 가지고 있는 좋은 브랜드다.


제2일(1월 22일)은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내고 현재 걸출한 인물들의 평전을 쓰는 김상웅 선생님의『약산 김원봉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뜨거운 관심 속에 이어졌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남양주에서 밀양까지 달려 온 김삼웅 선생님은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친 의열단을 연상시켜 준다.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열고 김규식과 민족혁명당을 창당하고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임시정부에 참여함으로써 좌우 합작 정부를 출범시킨 약산 김원봉은 밀양(부북면 감천리 57번지)이 낳은 인물로서 항일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별, 우리 독립운동사의 영웅이었다. 1919년 11월 9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청년들이 모여 비밀결사를 맺었는데 이것이 순경들도 놀라 도망간다는 의열단(義烈團)이다. 약산을 단장으로 하는 의열단 창단 시 단원 13명 중 5명이 밀양 사람이었다 한다. 의열단의 폭렬투쟁은 ‘7가살(七可殺)’과 ‘파괴대상’ 다섯 기관을 적시하고 <의열단 선언>과 <조선총독부관공리에게>라는 문서를 살포하면서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분으로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약산 김원봉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홀대 받았다. 카이로 회담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이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인하여 해방 후 요인 환국 제2진 즉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사상의 혼재 속인 해방 공간에서 민족전선 공동대표로 활동하다가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하고 미군정 법정에 서기도 하고 친일파 아들인 장택상 수도 경찰청장의 지시로 총독부 악질 경찰 출신인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중부 경찰서에 유치되는 등 테러와 신변의 위협을 당하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약산 김원봉은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한 제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1948년 4월 9일 북한에 갔다가 평양에 눌러 앉았다. 1958년 이후 자살설, 지병설, 은퇴설, 간첩혐의, 숙청 등 여러 가지 설이 많으나 약산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위대한 독립사의 영웅이 겪은 비극은 개인의 비극임과 동시에 국가의 비극이었다. 윤세주 열사의 묘소는 산제비도 날기 어려운 태양산에 중국 정부가 잘 보존하고 있고 문경에는 그 고장의 항일 투사 박열 의사 기념관을 450억원을 들여 지었는데 반해 약산의 첫 부인으로 치열한 독립운동가였던 박차정 여사는 독립운동훈장을 받았으나 그 무덤은 보잘 것 없이 퇴락하고 있으며 김원봉 장군은 월북하였다는 이유로 반세기(半世紀) 동안 금기의 인물이 되었었고 묘소도 없이 그의 생가 터에 작은 푯말 하나가 약산의 존재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에게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라며 분통을 터뜨린 약산 김원봉! 그가 1급의 독립운동가였음에도 남북에서 똑 같이 억울함과 한을 품고 스러져간 것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기도 하다. 우리(남북한)는 이제 그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혁명가의 고향이자 독립운동의 발상지인 밀양은 성지로서 차별화되어야 한다.


 


제3일(1월 23일)은 고려대학 국문과를 나와 성공회 대학에 나가는 이영미 교수가 『박시춘을 이해하는 몇 가지 코드』란 주제를 가지고 흘러간 옛 노래를 들려주거나 강의 도중 강사 자신이 스스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시청각 교육으로 시종일관했다.


박시춘을 이해하는 몇 가지 코드로서 밀양 ・ 1913년생 ・ 한국의 고가마사오(古賀正南) ・ 해방 후, 대중가요계 최고의 작곡가가 되다. 이 4가지 이해코드를 가지고 박시춘의 역사적인 위치를 지정하고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박시춘을 어떤 위치에서 보아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박시춘은 1913년 밀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순동. 밀양은 역사 있는 고도로서 옛 풍류의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20년대 밀양에는 카페가 생기고, 새로운 음악이 빠르게 들어왔다. 박시춘의 부친은 권번(기생조합-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을 운영했고 박시춘은 11세 때 카페 주인을 따라 순천으로 야반도주, 1920년대 영화계 일, 마술단의 바이올린 주자, 만주 등 공연, 신경에서 극단 입단 연주, 오사카에서 고가마사오의 인기를 보며 기타 연습, 1931년 주오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퇴, 귀국 후 가요계에 발을 딛고 대중가요계 최고의 작곡가가 되었다.


1923년 한국인이 지은 최초의 유행가 희망가를 기생 둘(박채선, 이류색)이 최초로 불렀는데 반주도 없고 경기창 비슷했지만 당대인들에겐 도・레・미・파・솔・라・시의 음색이 없었다. 희망가는 대중가요의 효시였다.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 1927년대 낙화유수, 강남달, 1932년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봄날은 간다, 1938년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 옛노래를 감상하면서 듣는 강의는 흥겨웠다. 민족적 아픔과 시대적 양상을 살펴 볼 때 한일병탄 이후 10년이 지나 1913년~19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민족적 울분이 없다. 1931년 만주사변 발발로 독립운동의 꿈이 사라지고 살아가는 방법으로 친일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타계한 작곡가 반야월씨는 친일 부분을 인정하고 빅딜했다. 본인이 살아 있으면 인정하고 빅딜하기는 쉬우나 후손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박시춘은 1970년대 김부자가 부른 『아버님 전 상서』로 끝이 난다. 유물은 정리를 잘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고 만다. 박시춘에 관한 모든 자료는 국가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에 잘 정리되어 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는 우리문화의 저변인 주역과 불교에 대한 성찰을 다루었다.


제4일(1월 24일) 울산대학 박태원 교수는 『고향 가는 오래 된 길, 불도』에서 ‘존재의 초대장’으로서 정신문화적 전통과 불교의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석가가 득도 후 35세부터 80세까지 45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가 초기 불경인 칼라마 경이 쓰여 진 배경이 되었다 한다. 진리 판별의 기준, 네 가지 고귀한 진리(사성제四聖諦/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지배되는 삶을 타향살이(苦), 길 잘못 들어 고향 잃기(12연기), 존재의 고향(滅-열반/해탈의 삶), 고향 가는 길-팔정도(八正道)와 삼학(三學) 등 네 가지로 나누어 오묘한 설법을 하듯 했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숨죽인 체 귀 기울였다. 붓다의 설법과 대화는 깨달음-존재의 고향이었고 붓다의 깨달음의 설은 진리판단 기준이 그 해법을 문제에 적용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자의 이론과 같다. 검증 불가능한 주장만 내세우면 종교집단의 싸움은 끝나지 않으므로 확인된 것만을 믿어야 한다. 도道가 높아지면 보이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과 불교계가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보편적 호소력과 보편적 장점을 취하는 연기법적 사유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의 싸움은 진화와 창조의 싸움이다.


 


제5일(1월 25일) 경북대학 장정욱 교수는 『주역과 우리의 현재』에서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周易四箋』<시괘전蓍卦傳>을 중심으로 세계의 상징이란 강의를 펼쳐나갔다. 주역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이지만 주역은 점술서이냐? 거기에 무슨 사상이 담겼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많은 의문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 또는 변화의 시대에 개입한 흔적이 있다. 주나라 때 말하지 않는 하느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주역은 만들어졌고 하느님/신은 인정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것은 바뀐다. 주역에서 말하는 점은 미신이나 잡술이 아니라 종교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을 예측해보라는 것이다. 점은 오늘날의 엄숙한 종교의식과 같았다. 주역의 역상일반론(易象一般論), 상징적 부호-그 운용 방식과 설정 원리, 실시법의 재구성-다산의 시괘전과 주자의 서의, 다산 시괘전의 의의와 특징, 세계의 상징을 다루었는데 생소한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게 해준 강의였다. 귀양으로 주역 공부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으나 다산은 정작 귀양생활에서 그 기회를 얻었다. 다산이 해석한 주역-주역사전周易四傳은 『주역周易』이라는 어두운 미로의 밝은 등불과 같아서 상대적으로 간명하고 쉽다. 역상(易象)은 연상된 것 또는 연상된 느낌, 이미지들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점필제 연구소가 실시하는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는 회를 거듭 할수록 알찬 내용과 다양한 강사진으로 이루어져 흥미를 더하고 있다. 12회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는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든 밀양의 근대 인물-사명당, 김원봉, 박시춘 등-밀양의 인물들과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룬 동양 고전인 주역과 불경을 중심으로 문화를 조망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밀양을 대표하는 인물을 재조명한 데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강의가 모두 끝나는 날 어떤 이는 강의를 듣는 동안 내내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는 수강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일년에 두 번 하는 아카데미를 상시적으로 할 수 없겠느냐는 의견에 대해서 정출헌 소장은 학교에 건의하여 강의 공간을 마련해 보겠다고 응답했다.


강의실을 나오면서 밀양이 가진 엄청난 문화적 가치를 후손들이 되살려 빛나게 해야 할 과제가 남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2013년 1월 29일 완결 -



 


밀양신문 주부기자 김금조


 


2012년 제12회 밀양인문고전아카데미 개강공지
고전을 통해 본 밀양의 인물(2013.2.4.밀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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